한국을 방문했을 때,
포닥을 계획하고 있는 학교 후배들을 만나게 되면,
첫 질문은 항상 ‘영어’에 관한 것이었다.
아시다시피, 정답은 없다.
인터넷에 쉽게 찾을 수 있는 다른 분들의 대답을 보면,
본인의 생각 전달은 기본에다가,
실험 과정 및 결과에 대한 discussion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답변도 보이던데,
프레쉬 포닥에게 그 정도를 요구하는 연구실은 많지 않다고 본다.
내가 경험한 두 학교(University of Minnesota-twin cities/
Ohio State University)의 몇몇 교수님들께
포닥을 뽑는 기준에 대해서 가볍게 물어보면,
대부분은 학위과정 동안 발표된 높은 수준의 논문과 실험 테크닉이
본인의 연구주제에 부합하는 것이 가장 큰 기준이라고 했다.
물론, 영어로 자기소개 및 본인의 연구 결과물에 대한 설명 정도는
기본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국박(국내 박사) 가진 나에게 미국에서 포닥 생활은
낯선 환경에서의 적응 여부도 관건이었지만,
나 역시 가장 두려운 건 “영어”였다.
대부분의 경우에 그렇듯이, 국내에서 학위과정을 마치는데,
영어는 졸업논문 쓰는 데 사용되는 도구일 뿐이었다.
미국에 왔으니,
이제는 말하고, 듣고, 이메일을 통해 소통까지 해야 하는 단계에 이르러야 했다.
처음에 포닥으로 갔었던
University of Minnesota-twin cities 소속 연구실의 지도교수는 중국인이었다.
스카이프를 통한 인터뷰 당시에는
‘말이 빨라서 그런가? 엄청 이해가 어렵네’라고 느꼈고,
더불어, ‘내가 긴장해서 더 안 들렸나 보다.’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큰 오산이고, 자만이었다.
첫 출근 후, 지도교수와의 면담에서 확신했다!
‘난 영어 듣기가 형편없구나!’
그 순간, 너무 당황스러웠다.
실험실 자리로 돌아와서 생각했다.
‘큰일이네. 어쩌지?’ 별 생각이 다 들었었다.
영어도 안되고, 실험을 시작도 못하고, 정말 멘붕이었다.
그때부터 몇 가지를 생각하고 다짐했는데,
‘의문문인지, 나에게 요구하는 실험에 대한 평서문인지, 첫 단어를 잘 듣자’
‘접속사 관사 등등 무시하고, 단어에 집중하자’였다.
외국 생활을 해 본 사람이라면,
언어적인 어려움은 없겠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건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현재, 스페인에서도 여전히 답답하다).
미국에서 실험 없이, 논문 읽고 하루 종일 교수랑 추후 계획을 짜는 이야기만 해도
국내에서 대학원생으로 밤늦게까지 실험했던 것 이상으로 힘들었다.
한 단어, 한 단어 놓치지 않으려고 신경 썼더니, 그게 더 피곤했다.
다른 사람들은 유튜브로 CNN 뉴스나 방송을 들으면,
금방 영어 실력이 향상된다고 말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더욱 들으려고 노력할수록, 자괴감만 늘어갔다.
‘아마 나이 때문이겠지?’라는 생각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일상이 반복되면서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단 한 가지 느끼게 되는 것은 주변 사람들의 억양이 익숙해진다는 것이었다.
물론, 영어가 들리고 이해된다는 것이 아니라,
말투와 모습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약간씩 추측되기 시작했다.
그것을 바탕으로, 대화에서 들렸던 몇 개의 단어를 통해서 의미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1년이 지나도 영어는 당연히 완벽하게 들리지 않았다.
다만, 상대방이 의미하는 바를 이전보다 알아가는 속도가 빨라졌다.
매주 랩 미팅 시간에 발표도 천천히 오래 하고,
학교 주체 세미나에 참석도 하고,
학회에서 많은 이야기 시간을 가지면서,
실험 관련 대화를 하는 데에는 점차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역시 시간이 흐르고, 익숙해지면서
나의 프로젝트와 관련된 혹은 내 전공분야와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는
단어를 알고 있어서인지 이해가 확실히 빨라지는 걸 느꼈다.
그러는 동안에도, 일상생활 대화는 어려웠다.
단지 이유는 많은 단어를 모르고 있었고, 문화를 몰랐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감은 생겼다.
‘단어를 알수록 대화는 어렵지 않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미국에서 약 7년간을 살았지만,
아직도 일과 관련된 대화에만 영어가 자연스러운 것 같다.
다시 한번 느낀다. 언어는 어릴 때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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