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벌써 8년 전?)에박사과정을 졸업하면서,
아마 졸업 전에 이미 자주 느꼈었지만,
내 생각의 대부분은 ‘실험하고 논문쓰는 대학원생의 삶은 진짜 지겹구나’였다.
일면에 ‘지금하는 일이 나랑 정말 맞는건가?’라는 의구심마저 들었으니까…
이러한 생각이 많아질수록,
‘이 일을 직업으로 평생할 수 있을까? 대학원 졸업하면 뭐하지?’ 로 고민의 사슬이 얽히는 듯 했다.
지방 국립대에서, 생물학을 전공했고, 비교적 관심이 적었던 식물을 대상으로 한
공부 및 연구를 해보니, 미래 진로를 상담할 선배를 찾는 것도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외국에 유학을 간 사람은 더더욱 전무했었다.
다행히도, 지도교수님의 첫 제자로써 사이가 좋았던지라 (아직도 사이가 좋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고민 상담도 하고, 진로에 관해 많이 여쭙기도 했다.
SKY 출신 교수님은 본인의 과거 경험과 경력대로
미국 혹은 다른 나라에서 포닥(postdoctoral researcher)으로 경력을 이어 나가길
당연한 듯 추천하셨고, 그 시점에 나도 막연히 그리고 어이없지만, 구체적인 이유도 없이,
‘외국 가겠는데?’ 라는 자신감 아닌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을 돌이켜봐도 현실은 그렇게 만만치 않았던 것 같다.
(영어도 못하면서 왜 자신감이 있었지? 아직도 참 이해할 수 없다 ㅋ)
미래 고민을 한참 하던 와중에,
'사실, 당시에 과외도 하는 중이었고, 연구실에서 꾸준히 받는 인건비도 있었고,
그래서, 경제적으로 그렇게 힘들지 않아서 인지는 몰라도, 미친 듯이괴로워하고 고민했던 것은 아니지만'
지도교수님께서 지금까지 했던 일도 마무리할 겸
1년 정도더 연구실에 머물길 원하셨고, 그 기간동안 포닥자리를 알아보는 것으로
잠정적으로 합의 아닌 합의 함으로써, 시간에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32살에 박사학위를 받고, 33살에 결혼을 하면서
점차 포닥에 대한 갈망은 시간이 갈수록 커졌고, 2013년 봄부터 본격적으로 apply를 시작했다.
CV (curriculum vitae)를 가다듬고, cover letter 써서, 교수님께 교정 받은 후,
거의 150개 이상의 연구실을 대상으로 지원했고, 정확히 2번의 인터뷰 기회를 가졌다.
CV에서는 나의 경력과 경험이 간결하고 눈에 뛸 수 있게 만들고자
다른 사람들이 웹상에 공개한 여러 CV 형식을 참고했고,
이를 바탕으로 나만의 스타일로 잘 정리하고자 아래와 같은 순서에 따라 만들었다.
- Name, Affiliation, Tel, E-mail
- Education and Training
- Professional Experiences
- Honors (Fellowship and Schlorship)
- Teaching
- Membership
- Reviewer and Judge
- Publications
- Presentations (National and International)
- Oral Presentations
- Poster Presentations
- References
Cover letter에서는
- 인사 (Dear Sir and Madam)
- 소개 (이름과 소속)
- 경력 (내가 소속되었던 곳에서의 경험, 프로젝트 기술)
- 경험 및 기술 (내가 습득한 세포 및 분자생물학적 기술에 대한 설명)
- 다짐 (귀 연구실에 소속이 된다면, 잘할것이다 등의 의미)
위와 같은 순서에 맞춰서 길지 않은 내용이 되도록
1장의 지면에 나의 모든 경험과 경력이 들어갈 수 있도록 기술했다.
실제로 150개 이상의 지원을 통해서, 2번 (미국과 독일)의 인터뷰를 가질 수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분야가 정말 같거나 최소한 비슷하지 않으면 거들떠도 안 본듯하다!
아니면 그동안의 나의 논문과 분자생물학적 skill이 부족해서 일지도 모른다!
현재에도 애써 전자라고 믿고 있는 중이다 ^^
현재도 아마 크게 다르지 않을것으로 생각하지만, 내가 경험한 인터뷰에서는
- 지원한 연구실의 교수님께서 본인 연구실 소개를 해주셨고 (특히, 현재의 연구과제에 관해서)
- 다음 차례로 나의 경력에 대한 소개를 요청하셨고
- 내가 왜 포닥을 하고싶은지? 그것이 왜 지원한 연구실인지?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가 무엇인지?
- 가능하다면 fellowship이나 scholarship에 대해서 찾은 것은 있는지? 가족은 몇명인지 등등
정말 사소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에 관한 질의와 응답의 시간이 이어졌고,
최소 1시간 이상의 인터뷰를 통해서, 영어로 인한 좌절, 미흡한 준비로 인한 후회를 경험한 순간이었다.
피가 마르는 며칠간의 시간이 흐른 후,
최종적으로 미국에서 기회가 주어졌고, 생각치도 못했던 힘든 순간이 2013년 9월에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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